인터넷을 서핑하다 눈에 띄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Your mind is a magnet.
If you think of blessings, you attract blessings.
If you think of problems, you attract problems.”
(당신의 마음은 자석과 같다. 축복을 생각하면 축복을 끌어당기고, 문제를 생각하면 문제를 끌어당긴다.)
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긍정과 낙관이 인생을 자동으로 긍정적이게 만든다는 그 명제를 보며, 문득 논어(論語)의 한 대목이 머리를 스쳤다.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염구(冉求)의 대화다.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역량이 부족합니다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그러자 공자께서 꾸짖으셨다.
“역량이 부족한 자는 가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법인데,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구나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짧지만 참 묵직한 대화다. 해보지도 않고 ‘나는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하는 제자의 나약함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어느덧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고 순리대로 산다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한창 지났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삶이 힘들다는 핑계로, 혹은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 내 처지에 뭘 더 하겠어’라며 스스로 한계를 지어버린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치열한 목표 없이 그저 삶이 흘러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순리요 미덕이라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공자의 꾸지람을 한 꺼풀 벗겨내어 염구의 입장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성인(聖人)의 엄격한 기준 앞에서도 “제 역량이 부족합니다”라고 고백한 염구는, 어쩌면 대단히 솔직하고 겸손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자신의 알량한 역량은 보지 못한 채,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날뛰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무책임한 당당함에 비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염구의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무명씨의 말대로 마음을 자석처럼 긍정과 낙관으로 채우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역량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성찰’이다. 무조건적인 낙관은 자칫 독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의 바닥을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다지는 마음먹기는 단단한 힘을 갖는다.
나의 한계를 냉정하게 대면하고, 그 바탕 위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때로는 스스로의 역량보다 훨씬 더 나은 기적 같은 결과를 마주하기도 한다. 마음이라는 자석은, 자신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의 손에 쥐어졌을 때 비로소 진정한 축복을 끌어당기는 법이다.
이제 나는 이순(耳順)의 고개를 넘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내 역량의 크기를 명확히 알고 인정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성숙함일 터다. 지레 스스로에게 한계의 선을 긋지 않되,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아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일흔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내가 다시금 세워보는 단단한 마음먹기다.



















